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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합니다 - 창세기
 “아담 이전에도 인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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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2014-03-05 오후 2:23:10  수정:2014-03-05 오후 2:23:10
 



‘지금이 어느 때인가?’라는 질문에 불신자든 그리스도인이든, ‘말세 중의 말세’라는 데에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의 비밀을 온전히 풀지 못하여 창조론이 정론으로 교과서에 기재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자연 과학계에서 창조론의 명명백백한 증거가 발견되고,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동·식물의 화석이나 지층 등의 원시적 존재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이나 기독교인인 과학자 다수가 방사성 탄소검사 원리조차도 부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논리와 증명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계에서 기독교의 창조론은 비주류학설로 격하되어, 기독교의 창조론이 일개 종교적 주장이나 터무니없는 전설로 전락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비기독교인 과학자들의 가설일 뿐인 진화론이 그럴싸하게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창세기 1장의 세상 창조와 2장의 에덴 창설을 구별하지 못하여, 45억년 정도로 추정되는 지구 과학사와 원시 생명계를 6천 여년 역사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한다. 그러다보니 프로테우스의 침대처럼 자신들의 주장에 맞지 않는 것은 잘라버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새로운 이론과 가설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기존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이론이나 해석을 제시하는 사람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사장시키고 있다.

그들이 주장의 근거로 삼는 성경구절 중 하나가 바로 고전15:45의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이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라는 말 때문에 아담 전에는 모든 생물과 인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마지막 아담, 바로 그리스도 다음에는 사람들이 없었는가?’라고 질문하고 싶다. 이 하나만 봐도 허점투성이인 기존의 학설을 고수하는 강경보수파들은 올바른 해석마저도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때 그들이 인용하는 말씀이 벧후3:16의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이다. 이 말씀을 근거로 그들은 더 이상의 올바른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꼴이다. 눅11:52의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딱 들어맞는다.  

그 다음에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성구가 창2:4이다. 공동번역을 보면 “야훼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에 하늘과 땅을 지어 내신 순서는 위와 같았다”라고 1장의 천지창조를 설명하면서 단락을 마친다. 그리고 창2:5부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나 개역개정 창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를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의 날에 마치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다.

창5:1~2도 이와 같다. 창5:3부터 아담의 계보를 설명하기 전에 1장의 사람창조에 대해 잠시 언급한다. 개역개정과 개역한글, 표준새번역과 NIV에서는 ‘창조, Created’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1장의 사람창조를 설명한다. 그리고 개역한글과 표준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의 형상’, 개역개정과 KJV흠정역에서는 ‘하나님의 모양’, 공동번역에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개역개정, 개역한글, 표준새번역과 NIV에서는 공동번역과 KJV흠정역과 달리, 아담대신 사람이라고 기록하여 그 사람이 아담이 아닌 1장에서 창조한 사람임을 확실히 하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오랜 역사인 창세기 1장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바라’ 창조와 불과 6천 여년 밖에 되지 않는 2장의 기존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아사’ 창조, 즉 말씀 창조와 흙 창조, 인류사 창조와 구속사 창조를 온전히 구별하지 못하고, 2장 창조를 1장 창조의 확대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그들은 오래된 지구역사나 생명체 존재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간극이론’이라든가, 천사로 대치되는 ‘고대 인류론’, 짧은 기간 내에 수십억 년의 변화가 어떤 사건들을 계기로 일어났다고 가정하는 ‘지구 격변설’ 등의 그에 따른 가설을 만들어냈다.

간극이론과 원창조설은 창1:1과 창1:2 사이에 이미 태초에 창조하신 세상이 그룹이었던 루시퍼의 반란으로 파괴되어,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어서(KJV흠정역) 3절부터 재창조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시퍼가 교만하여 쫓겨난 때는(겔28:16) 창세 전이 아니라, 불과 6천 여년 전의 에덴동산에서이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사 14:12~15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의 교만에 대해 겔28:16~17에서 심판을 내리셨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겔 28:17~18

위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루시퍼를 멸하여 땅에 던지신 것이지 지구를 멸망시킨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사건과 가나안 정탐 사건과 고라의 반역으로 하나님께 범죄 하였을 때, 모세가 중보기도를 드리기도 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요일4:8)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루시퍼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모든 생물과 자연과 우주를 멸하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가설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파괴의 하나님이 아니다. 간극이론과 원창조설을 주장하는 그들은, 창조의 하나님을 파괴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가 아니라 파괴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 죄,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도전한 죄, 하나님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죽을 죄를 상징하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언약의 돌판들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속죄소(Mercy Seat)가 덮고 있다(히9:4~5). 즉 죄를 덮어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한없는 자비와 긍휼로 용서하시는,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속죄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분함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막아서서 그들을 영원히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분이시다(롬3:25).

그럼에도 맞지 않는 자기주장만 하는 자들은, 짐승의 피 대신 자기 아들을 제물로 삼아서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주신(히9:22)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용서와 구원의 하나님을,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 괴팍한 하나님, 혼돈과 공허의 하나님, 파괴의 하나님, 죽음의 하나님으로 둔갑시켜 하나님을 억울하고 슬프게 만들고 있다. 또한 그들은 성령을 근심케 하고, 성령을 모독하며,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 10:29

또한 그들의 주장은 말씀 창조와 흙 창조,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의 순서가 다른 것을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가 식물, 물짐승, 날짐승, 땅짐승, 남자와 여자의 순서인데 반해, 2장의 창조 순서는 남자(아담), 식물, 들짐승, 날짐승, 여자(하와)의 순서이다. 이렇게 1장과 2장의 창조 순서 자체도 다르다. 또한 하와는 말씀으로도 흙으로도 창조되지 않았다. 바로 아담의 갈빗대로 지어졌다.

1장은 세상 창조이고, 2장은 에덴에 동산을 별도로 창설하신 것(창2:8)을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로 지킨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창3:24). 심지어 표준새번역에는 ‘창설’을 ‘일구시고’, 공동번역에는 ‘마련하고’로 기록되어 있다.

1장에서는 말씀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물짐승과 날짐승과 땅짐승을 다스리게 한 것에 반해(창1:28), 2장에서는 흙으로 창조된 아담에게, 흙으로 창조된 들짐승과 날짐승만을 이끌고 가서 아담이 그들의 이름을 짓게 하였다(창2:19). 물짐승이 빠진 것이다. 그것은 에덴에 있는 동산은 땅이기 때문에 물짐승은 존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장 창조의 역사는 45억 년 가량으로 추정되는 현존 지구 과학사와 나이가 같다. 그 사이 수많은 빙하기와 퇴적과 균열을 거치면서 지구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원시 동물들은 자연 퇴화되었으며, 맘모스를 포함하는 고대 생물과 식물들의 화석이나 흔적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얼마 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6,600만 년 ~ 6,800만 년 전) 초식공룡인, 1개의 코 뿔과 2개의 이마 뿔이 있어 ‘뿔이 3개인 얼굴’이라는 뜻의 ‘트리케라톱스’를 전시하였다.

또한 러시아에서 7백만 년 전의 매머드가 그 털 하나도 상하지 않은 냉동 상태로 발견되어 전 세계가 놀랐으며, 그와 유사한 증거들이 부지기수다. 6천여 년으로 계산되는 2장의 창조로는 고대 원시 생명체들이나 빙하기 지질퇴적층이나 화석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노아의 홍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노아의 홍수 때 물로 심판 당하여 전부 죽고 만다. 따라서 현존 인류는 오직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나온 자손들로 이루어졌으므로, 노아의 족보를 더듬어 올라가다보니 아담이 현존 인류의 조상이 되어 첫 사람 아담이라고 표현된 것이다. 세상 족보는 훨씬 이전부터이지만 노아의 홍수 때 다 멸망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 3:20

즉 성경에서 노아 전의 세상의 족보는 자취가 사라졌으나,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신 아담과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신 하와의 자손만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인류만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흙으로 창조된 현재의 인류에 대해서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전 3:20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 12:7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순종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첫 사람 아담에게도 구원이 미칠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고전15:45의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라는 말씀과 같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흙으로 지어진 사람인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이 성취되었고, 성경에는 아담의 계보로 구속사만 남게 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또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뒤에 만나는 자가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였는데, 그것은 이미 세상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창4:14).

일부에서는 가인이 두려워한 자를, 아벨의 살인사건 이후에 아담과 하와가 낳은 딸과 가인이 동침해서 생긴 자녀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레18:9, 11과 신27:22에 동복이거나 이복이거나(공동번역)를 막론하고 동기간의 동침을 금지시키신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혹자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예를 들어 이것을 반박한다. 그러나 이들은 동복이나 이복이 아니라 친척관계이다.

아담과 하와 외에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할 수 없이 자녀들끼리 동침하여 후손을 낳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은, 온 우주만물과 자연과 생명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시킨(눅1:35)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생각으로 제한시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는 동복누이와의 동침을 할 수 없이 허용하시다가, 레위기와 신명기에서는 불륜으로 공포하고 금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거룩성을 변개시키는 우스운 꼴이 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민23:19, 삼상15:29, 약1:17의 말씀을 통해 볼 때도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뜻을 변개시키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 23:1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삼상 15:29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그들의 생각대로 따진다면,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여 낳은 에녹도 배우자가 없었으므로, 부모가 낳은 자기 친누이와 동침해서 이랏을 낳고, 이랏도 마찬가지 방법을 택하여야 한다(창4:17~18). 후에 아담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 셋도 자기 부모가 낳은 친누이와 동침해서 에노스를 낳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창4:25~26).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은 시간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개역개정, 개역한글,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KJV흠정역 모두 창4:14을 ‘오늘’이라고 표현하고, KJV흠정역이나 NIV에서도 각각 ‘this day’, ‘today’라고 표현하였다. 이로써 가인이 쫓겨나고 유리하는 자가 될 때 그를 만나는 자마다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하는 고백을 한 날이 바로 살인한 날이고, 지면에서, 즉 아담과 하와에게서 쫓겨난 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 4:14

결국 가인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가 여호와 앞을 떠나게 되고(창4:16),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다른 씨로 하신 셋이 에노스를 낳았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즉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는 역사가 회복된 것이다(창4:25~26). 따라서 가인의 아내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던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쳐주신 것을 시기한 바리새인들이, 그로 인하여 분쟁을 삼았다(요9:16). 예수님께서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요9:39)라고 말씀하시자,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도 맹인인가?”(요9:40)라고 반문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9:41)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본다고 하는 신학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본성을 변질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맞지 않는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자들은, 하나님의 본성을 자기들의 학설을 위해 변질시키는 것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무릎을 꿇고 말씀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5

아무쪼록 많은 연구와 재해석을 통하여, 모든 생물과 자연과 우주의 근원은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는 불신과학자들의 만장일치 추대로, 조물주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인 창세기가 전 세계 교과서에 올바르게 널리 소개되길 소망한다.

또한 전 세계 학생들이 국비로 인쇄되는 교과서를 통해 지도 교사들에 의해 전도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랄 뿐이다.

 [이승희 목사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이승희 목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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